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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행복의 뜨락

2016-04-21     한기연

3월 중순이 지나도 찬바람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였다. 낮에만 따뜻한 기운이 머무는 날씨가 계속되고 봄꽃이 피기를 기다려도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그러더니 어느날 갑자기 꽃이 핀 것처럼 노란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하얀 목련, 벚꽃이 만개해 설레는 봄을 맞이했다.

봄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한 달에 한 번 기다리는 모임이 있다. 21년 전 음성에서 여성백일장 입상자를 대상으로 지속된 모임이다. 20대 후반 아기를 등에 업고 글공부를 같이 하던 문우들은 자녀의 성장을 함께 해 왔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시간을 공유해 왔다.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한 달에 한 번의 만남이 21년째로 이어졌다. 지금은 수필가이신 B선생님을 포함해 12명의 정예요원이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만나고 있다.

모임의 연령은 다양하여 70대, 60대, 50대, 40대가 세대차이도 뛰어 넘어 어우러져 있으며 그 중에서 나와 내 친구는 40대로 막내이다. 막내들은 행사때나 모임 때 어른들을 챙기고 심부름도 잘한다. 가끔은 여기저기서 부르는 ‘막내’라는 호칭과 심부름에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와 내 친구는 40대 후반이 되어서도 음성 모임에서는 막내자리를 벗어 날 수 없었다.

올 해 드디어 나는 막내를 벗어날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고민 끝에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하고 대학원을 가게 되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은 나를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통해 만남을 거듭하면서 나이를 얘기하게 되었는데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으로 내가 그 중에서 제일 많았다.

처음으로 맏이가 된 모임이 생긴 것이다. 늘 막내로 모임을 이끌기보다는 의견을 고분고분 따르고 뒤만 잘 쫒아 가면 되었는데 맏이가 되고 보니 의견제시를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음료수와 간식을 미리 미리 챙겨가고 베푸는 입장이 된 것이다.

친정집에서 나는 맏딸로 부족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게 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는 못하지만 무슨일이 생기면 엄마는 전화를 하신다. 그럴 때마다 찾아가서 엄마가 부탁하는 일을 해결해 드리곤 한다.

맏이 노릇은 생각만큼 쉽지 않으며 책임감만 있을 뿐 실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많다. 집 안에서 맏이의 자리는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으로 자연스레 내가 할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익숙해졌다. 좋고 나쁨을 떠난 자리였다.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이루어진 모임에서 막내자리를 벗어 나고 싶었다. 막내로 대접받고 귀여움 받는 줄도 모르면서 ‘막내야’ 하며 이것 저것 시키는 줄 착각하며 살았나 보다. 환갑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막내로 불릴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이 부르는 정겨운 한마디에 ‘네’하고 씩씩하게 대답하고 그렇게 불릴 수 있는 그 모임이 참 좋다. 오늘따라 벚꽃 날리는 봄이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