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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오리

행복의 뜨락

2012-07-05     이재선

매주 금요일 저녁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다. 아파트는 별도의 요일 없이 버려도 되지만 주택은 요일을 지키지 않으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 중에 하나가 쓰레기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나중에 먹어야지 하고 냉장고 밑 칸으로 내려놓은 음식은 꼭 버리게 된다.또 냉장고에 넣지 않은 국 종류도 대부분 버리게 된다. 특히 여름철에는 과일껍질이나 채소 다듬은 게 많다. 그러다보니 쓰레기봉투는 언제나 포화 상태다.

우리 어린 시절은 배고픔을 생활로 알고 지내던 부모 시대에 비해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골 학교에서는 도시락도 챙겨 다니지 못하는 친구와, 급식으로 주는 옥수수 빵 하나로 저녁때까지 지내는 친구들도 많았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도 크게 달라질게 없다. 군것질거리도 없지만 식사시간이 되어도 포만감 넘치는 식사는 기대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는 게 소원이었다. 그렇게 먹을 것이 귀하다보니 버리는 것도 거의 없었다. 굳이 절약이나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지난달에는 군에 간 아들 면회를 갔었다. 부대 안에는 면회객들을 위한 식당이 잘되어 있어 굳이 음식을 싸가지고 가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사 먹일 수 있었다. 전화 한 통이면 통닭과 피자는 물론이고 중화요리까지 모두 맛볼 수도 있었다. 일반 사회인처럼 전화 한 통화로 식사나 간식거리가 해결되는 것을 본 친정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허~ 참"만 연발하셨다.

아들이 좋아하는 통닭을 시켜가지고 군대인지 공원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가꾸어진 연못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육이오 참전 용사이신 친정아버지는 첫 번째로 “배는 고프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육이오 전쟁 중에는 주먹밥 한 덩어리가 하루 식사의 전부였단다.

종일행군을 하면서 힘든 것 보다 배고픔이 더 참기 힘들었다는 눈물겨운 얘기를 아들은 건성으로 들으며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로 치부하는 듯 했다.

요즘 군대는 고기도 자주 먹으며 군것질거리도 군 마트에 가면 종류별로 있다고 했다. 우리의 대화를 엿듣듯 오리 몇 마리가 기웃거리고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주자 멀리 있던 오리들까지 몰려왔다.

재미로 이것저것을 던져주었다. 처음에는 과일껍질도 잘 먹던 오리들은 메뉴가 많아지자 고기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실컷 먹은 뒤에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오리처럼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다. 그러나 맛있는 것만 골라 먹게 되면 자연히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을 알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들 역시 군 입대 전날 배탈로 인해 응급실 신세를 졌다. 군에 가면 못 먹을 듯이 맛있고 원하는 것만 푸짐하게 차려준 것이 화근이 되었다. 넘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것이 좋다는 얘기는 다른 사람에게만 하는 말이다. 내게 닥치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얼마 전 우연히 다큐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밀림 속 아프리카 부족들의 생활 이야기였다. 한 마을 남자들이 사냥을 해오면 여자들은 요리를 해서 다함께 먹었다. 그런데 음식이 사람 수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였다. 사냥거리가 많은데 넉넉하게 먹지 않은 이유를 물어보니 배가 너무 부르면 다른 일이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란다.

우리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눕고 싶고 다음 일을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그렇지만 별 생각 없이 다음에 또 그런 행동을 반복하며 일상이려니 한다. 주위에는 맛있는 음식이 참으로 많다. 점심메뉴정하기가 신경 쓰인다고 직장인들은 투덜거린다.

이렇게 음식을 골라 먹고 있을 때 지구한켠에서는 배고픔이란 단어보다, 굶주림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앙상한 갈비뼈에 눈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어린아이가 세계 곳곳에 너무 많다.

이런 방송을 볼 때나 들을 때는 안타까워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지만 내 일이 아니기에 곧 잊어버린다. 그런 일이 내 일이 아니기에 하면서 얼버무리게 되는 것은, 아이들이 졸업한 후로 월드비젼에 조금씩 내던 후원금도 끊어버린 자신이 오늘따라 부끄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