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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타기
파도타기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4.04.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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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정희 수필가.

민들레가 피었다. 초록 단추도 같고 노랗게 수술까지 예쁘다. 춘설에 꽃샘에 어수선한 중에도 배밀이로 바닥을 뚫고 피는 꽃이다.

광어회를 먹으러 왔다. 씹을수록 쫄깃한 맛에 비린내가 없어 최고의 육질을 자랑한다. 끓일수록 노랗게 뜨는 기름은 물에만 씻어도 개운하다. 생선회 중에 으뜸이라더니 이름값을 한다.

넙치라고도 부른다. 푹 고아 낸 국물에 미역을 넣고 끓여도 맛있다. 초벌 요기 끝낸 동무의 말이다. 높이는 상관없이 바닥에서 헤엄쳐 온 결과다. 바다에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유달리 납작한 생선으로 되었다.

바닥에 머리를 두는 것도 높이 떠오르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소망의 진원지 또한 바닥일 게다. 목표는 높이 둘지언정 겸손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거다. 바닥이 없으면 높은 산도 두 팔 벌려 자랄 수 없다. 나무도 그 가지는 뿌리를 통해서 바닥에 의지했다.

꽃씨든 풀씨든 싹을 틔우면 그때부터 뿌리가 나고 그늘을 넓힌다.  내 삶의 저변도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힘들었다. 고난이 크면 영광도 빛날 거라던 그 메시지. 흐르는 냇물도 돌을 치우면 노래를 잃어버린다. 소망의 깃발은 고난의 성벽에서 휘날린다. 큰 나무일수록 바람이 세다.

행복의 일기장도 첫 단락은 깊은 바닥에서 시작된다. 높아지기 위한 또 다른 방편이었다. 높이가 추락을 동반한다면 바닥은 안전을 도모한다. 광어가, 고기잡이 어부를 피할 수 있는 최적지는 깊은 바닥의 진흙탕 뻘이라고 믿는 것처럼.

바닥에서 힘들지언정 민들레처럼 핀다. 비상시 대피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바람 부는 제주의 너와집과 지진이 흔한 지역의 건물도 조개껍질처럼 납작 엎드렸다. 하늘을 찌를 듯 태산의 측량이 가능한 것도 높이를 꿈꾸는 바닥의 힘이었거늘.

늦가을 낙엽도 거기 뒹굴었다. 바람에 날리면서 이제야 홀가분하다는 얘기도 그때쯤이다. 떨어지기 싫다고 망설였으면 이듬해 초록과 녹색정원은 바랄 수 없다. 진정한 소망은 바닥을 감수할 때 이루어진다. 믿음이 가치로 형성되고 그 가치가 운명으로 바뀌는 것 또한 바닥에서도 아주 바닥일 때다.

가장 깊은 절망이 가장 높은 소망을 새긴다. 이른 봄 삐져나오는 새싹도 바닥을 향해 엎드렸다. 바람막이가 생각날 만치 추운 날씨지만 폭폭 파고든 채 눈을 치뜨기 시작하면 들판도 일제히 푸르러진다. 파도타기의 명수인 광어가 최고의 횟감이 된 배경을 보는 듯하다.

얕은 데 사는 고등어 정어리도 영양식이기는 하나 깊은 맛은 따로 있었다. 질척이는 늪에서도 꽃은 피듯이 지긋지긋한 수압에도 거기서 쫄깃한 인생관이 나온다. 진솔한 삶 때문에도 운명의 중심부로 들어가야 하리. 꽃피고 새우는 봄도 춘설과 꽃샘에 동티날까 바짝 엎드려 있었던 것처럼.

파도타기 속내를 배우면 고난 끝에 빛나는 소망도 알 수 있겠지. 우리 삶의 보호막도 행복이 아닌 밑바닥에서 파도타기였다. 민들레의 서식지도 돌밭이지만 초록 단추 여미고 피는 배짱이야말로 봄 마중물로 충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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