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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찾아가다
발원지 찾아가다
행복의 뜨락
  • 음성뉴스
  • 승인 2024.04.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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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이정희 수필가

한 모금 먹는 대로 솔잎 향 그윽하다. 특유의 청솔가지 내음도 끝내 준다. 오늘 아침 유리병 속으로 강줄기가 보였다. 송화 꽃과 솔가지 재워 놓고 설탕을 뿌려두었다. 속속 잦아들면서 연둣빛 강이 생겼다. 함지박에 강을 쏟아서 체에 밭쳤다. 꿀병으로 두 개가 나왔다. 짬짬 마실 때마다 들려오던 숲속 푸른 메아리.

밖에는 꽃비까지 내렸다. 기와지붕 물받이 틈으로 송홧가루 띠가 엉겼다. 밤새도록 퍼부었었지. 어찌나 선명한지 해마다 찰랑이던 5월 꽃가람. 아무리 그래도 정체불명 노랗게 송화강일 줄이야. 그만치 좋았던 걸까.

송화 꽃 핀 자리도 삥 돌아 솔숲이다. 비만 오면 자배기만 한 강이 생겼다. 구름도 꽈리가 잡히는 초여름, 수백 그루 소나무가 연미색 꽃 달고 부풀어 오르면 하늘까지 뿌옇다. 갑자기 흙비에 겨자 빛 꽃 범벅이지만 얼마나 시적이었으면 일 년에 딱 한 번 송화강으로 불렀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강이라면 발원지가 있어야 하는데 후드득 내리고는 끝이다. 참으로 멋진 강인데 발원지가 없어? 설명할 수도 없고 혼자 우겨대는 판인데 조짐은 있었다. 발원지까지는 아니어도 송홧가루가 날렸다.

5월 어느 날 장독에서부터 매캐한 느낌이 온다. 장항아리 뚜껑을 열면 그 속에도 묻어났다. 현관에도 착착 쌓인다. 결이 곱고 투명해서 밟는 대로 미끄러질 것 같다. 거실이야 매일 매일 닦아내지만 가끔은 너무했다.

비가 오면 약간은 누그러졌다. 한차례 또 뿌려댈지언정 공습경보 시점은 끝났다. 꽃가루 알레르기에 눈까지 슴벅대지만, 장맛비도 같고 꽃비도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 견딜만하다. 어쨌든 강은 강이었으니까. 밤하늘이 별들의 집성촌이듯 소나무 숲도 집성촌이었기 때문에.

소나무는 쓸모가 많다. 재질이 좋아서 대들보와 서까래는 물론 배를 만들고 다리를 놓을 때도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남산 소나무를 다 주어도 서캐조롱 장사하겠다는 비유까지 나왔다. 옷섶에 다는 액막이용 장식품으로, 요즈음 같으면 액세서리 장사가 적성이란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남산 소나무라면 넝쿨 째 호박에 횡재도 그런 횡재가 없을 테니 훨씬 강도가 높다. 정원수 한 그루가 현 시가 천만 원이면 오백 그루만도 50억이다. 목재상 중에서도 대규모 아이템인데 일언지하 거절했다. 오늘 본 뒷산의 송화강 소나무도 굉장한데 남산의 그거라면 크기와 수령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도 서캐조롱 장사밖에 모른다는 타박 같지만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솔바람과 향기는 좋아도 나무까지, 더구나 몇 백 그루씩은 가당치 않다.

분수에 맞지 않는 행운은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치수 보고 옷 짓는데 그럴 바에는 가난해도 기와집 짓는 행복이 좋다. 적정선만 지키면 이름조차 고급스러운 비단 가난이다. 남산 소나무를 다 준대도 서캐조롱 장사를 고집하던 누군가의 아취도 숲속 내음만치나 싱그럽다. 오늘의 추억이 송홧가루처럼 먼 세월 끝자락에서 땀땀 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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