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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효녀는 부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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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2.03.13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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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 곳은 공항 대합실이다. 형형색색의 옷과 가방을 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설 명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가려는 사람들로 항공회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란다. 추위를 피하여 따뜻한 나라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행기 표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번에는 고속버스 터미널로 화면이 바뀌었다.

양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표를 끊는 사람과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인다. 헬기에서 촬영한 고속도로는 여러 가지 모양의 장난감 자동차 전시장 같았다.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광경을 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 년에 한번뿐인 설 명절을 지내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주부들은 바쁘다. 특히 우리지역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어야 완성품인줄 알기에 며느리들은 더 바쁘다. 전 부치랴 산적 준비하랴 앉아서 편하게 보는 뉴스가 아니라 이리저리 다니면서 힐끗힐끗 보는 게 고작이다.

25년쯤 해보았으면 달인은 아니더라도 척척박사는 되었는데 손놀림도 빠르지 않고 별로 즐겁지가않다. 새댁시절에는 서투른 솜씨지만 어머니를 따라하는 게 재미있고 어머니 몰래 하나씩 먹어보는 전이 참 맛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방으로 주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도 예뻤었다. 설빔을 준비하며 아이들 모습에 대비시켜보는 재미도 참 쏠쏠했었다. 설날아침 설빔으로 갈아입고 좋아하는 아이들 모습은 나를 저 먼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친정은 종갓집이다. 아침 차례를 지내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빨리 잠들어야 설날아침이 얼른 올까봐 일찍 잤던 일도 재미있는 추억이다. 우리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먹는 떡국은 참으로 맛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차례음식 먹을 생각만 했고,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색다른 음식들이 식욕을 돋우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작은집으로 가서 차례를 또 지냈다. 우리집에서 이미 먹었기에 작은집 차례음식은 그냥 남기 일쑤였다. 그것이 어린 내게는 불만이었다. 우리집에서 먼저 먹고들 가니 우리음식은 얼마 남지 않아 항상 자매들 몫이 부족했다. “엄마 작은집에서 먼저 차례지내면 안돼?" 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이다음 작은집이 없는 집으로 시집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먹을거리가 흔하지 않던 시절인 만큼 명절은 아이들의 생일날 보다 더 좋았어야 했는데 많은 쪽수로 분배된 먹을거리에 그다지 즐겁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니 친정어머니는 오죽했으랴싶다. 시댁은 작은집이 없다. 아버님이 독자시니 함께 차례를 지내는 사람도 가족뿐이었다. 결혼 후 첫 명절이 되었을 때 그것이 제일로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친정과 다를 게 없는 것은 종갓집이라는 것이다. 다달이 돌아오는 제사는 정말 달갑지 않을뿐더러 시대가 바뀌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남편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시어머니보다 내가 명절음식이나 제사 준비를 더 잘한다. 어머니는 내 뒤에서 “에미야 이거 이렇게 하면 되니? 저거 어디 갖다 놓을까?" 이런 얘기는 새댁시절 어머니한테 내가 물어보았던 것들이다. 그 많은 일들을 척척 알아서 하는데도 별로 즐겁지도 않고 대단해보이지 않는 것은 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 중 하나 일게다.

어느 작가의 후배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게 안식년을 준다는 말을 듣고 설마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한 해씩 돌아가며 휴가를 준다는 시어머니가 생불이 아닌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지금 시대에는 크게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다. 공항 대합실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를 포함한 많은 주부들이 부러워할 게다.

그러나 '저런 저런 불효자 같으니라고!' 누워서 뉴스를 시청하는 내 남편 같은 남자들은 속으로 쌍시옷을 날리고 있을게 뻔하다. 하지만 딸이 내 아내처럼 살고 있다면 남편은 사위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요즘은 기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고 명절 때만 지낸다는 집안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모두 떨어져 살고 있으며, 바쁘다보니 이런 방법이 합리적일 거라고 조상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우리 조상은 '효'를 굉장히 중요시 했다. 사람의 생각과 시대가 바뀌다보니 '효'의 개념이 좀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효'가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닌데 어른들은 한숨을 쉰다. 가지가 꺾이고 잎이 떨어져도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봄이 되면 또 다시 꽃이 피고 나뭇잎이 돋아날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산다.

공항 대합실보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더 붐비고,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이루어도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아직도 우리 곁에는 효자 효녀가 더 많다는 증거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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