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포커 게임

언제나 그 자리에
언제나 그 자리에
행복의 뜨락
  • 박희남
  • 승인 2012.03.23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희남 수필가

친정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오래 묵은 아카시아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누워있고 나무 밑둥은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데 자꾸썩어들어가고있다.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까.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는 오월이면 그 나무도 꽃을 피우긴 하는데그 꽃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잎파리도 무성하지 못하니 꽃은 더욱 초라할 수 밖에........

그러나 드문드문 피운 꽃이지만 아직도 그 향기만큼은 고요한 동네를 덮고도 남는다. 친정집에 갈 적마다 만나는 그 나무를 보면 왠지 아버지를 보는 듯 하다. 젊은날 그 푸르렀던 청춘을 고스란히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껍데기만 남겨진 것 같은 가냘픈 모습.분명 아버지와 그 나무는 많이도 닮아 있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메어오는 이름 아버지........ 가난하기 그지없는 농부여서 자식들에게 늘 미안해하셨던 아버지, 체격이라도 건장하시다면 그나마 안쓰런 마음이 좀 덜 할수도 있었을텐데 왜 아버지는 몸집 마져도 그렇게 작으신걸까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울음을 본 것은 30여 년 전 ,큰 언니를 시집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였다. 나는 윗방에 있었는데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렸다.누구의 울음소리일까 깜짝 놀라서 문을 삐꼼히 열고 안방을 훔쳐보던 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아버지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엉엉 울고 계시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황소울음소리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왜 우실까 ? 어리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그 울음의 의미를 알기에는 철이 덜 들었었기에 그 때는 미처 몰랐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의 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절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모로서 자식한테 가난때문에 고생만 시킨게 한없이 마음아프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어느만큼의 시간이 흘러 나는 두번째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언니들은 나가서 직장생활하다가 하나, 둘씩 결혼을 했는데 하고많은 딸중에 여섯째 딸인 나는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 옆에 제일 오래 있었던 딸이다.내가 결혼을 하고 신행갔다가 시댁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엄마는 우시느라고 나오지도 않고 아버지만 동구 밖 까지 따라나오셨다. 바로 그 나무 밑에서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시집은 집하고 다르니 뭐든 조심하고 시어른들 잘 봉양하고.........' 불과 두어마디도 채 못하고 목이 메이시는 것이다.

눈물을 보이기 싫으셔서 돌아서셨지만 아버지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잡은손을 놓고 돌아서는데 한없이 작은 아버지의 어깨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그 때도 그 아카시아나무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 차가 다니지 않았던 그 고갯길을 한시간동안 울면서 걸어왔다. 이제 팔순을 넘기신 우리 아버지,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고 늘 자식들 걱정에 잠못이루신다는 아버지, 이제는 자식들 걱정 내려놓으시고 그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서 계셔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