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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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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뜨락
  • 이재선
  • 승인 2012.05.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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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선 수필가.

라면을 끓인다. 딸애와 둘이 먹기에 점심밥이 좀 부족한 듯하여 라면을 먹기로 했다. 평소에 즐기지 않는 라면이지만 이렇게 찬밥이 조금 남아 있을 때는 라면만 한 게 없다. 오늘처럼 봄바람이 쌀쌀한 날에는 얼큰한 라면 국물이 입맛을 돌게 한다.

라면은 특별한 반찬 없이 김치 하나로 만족할 수 있어서 좋다. 또 라면은 냄비뚜껑에 열기가 남아있어서 그런지 뚜껑에 건져 먹는 게 맛있고, 그렇게 먹다 보니 설거지거리가 줄어서 더 좋다. 딸애는 친구네 가족이랑 눈썰매장에 갔을 때, 봉고차 트렁크에서 끓여 먹었던 라면이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내게도 잊을 수 없는 라면 맛이 있다.

계절로 보면 바로 지금쯤인 3월 말경,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제주도에서 일이다. 계획 없이 떠났던 한라산 등산길에서 우리는 배고픔에 지쳐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십오 년 전이라 휴게소에서는 컵라면과 캔커피, 그리고 캔맥주가 판매품의 전부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며 먹었던 컵라면은 신혼여행 열흘 동안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 된다.

친정 동생이 라면회사에 다니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 덕에 라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제품이 나오면 우리 가족은 시식을 해보고, 느낌을 얘기하며 서로 토론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타 회사 제품과 맛도 비교해보고, 라면 모델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진다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았다.

라면 종류가 그렇게 많다는 것과, 소비자 입맛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라면은 간식이 아니라 별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종류를 누구나 손쉽게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처음 일본에서 라면은 만들어졌다고 한다. 1956년에 특허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 삼양라면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오랜 기간 곡식 위주로 생활을 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라면에 대한 반응이 냉담했다. 그런데 혼·분식 장려정책이 나오게 되면서 라면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적은 비용으로 간편하고 영양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장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라면을 처음 만든 일본은 1인당 1년에 소비하는 양이 43개인데 비해,우리나라는 84개를 소비하는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즐겨 먹는 나라가 되었다.

또한 라면은 정부가 비상사태 시 관리하는 품목 중의 하나가 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라면은 면발도 중요하지만 스프가 맛을 좌우한다. 시원하고 개운한 맛과 얼큰한 국물 맛에, 해장국처럼 나온 라면 모두는 스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드라마에서 외국 사람이 요리할 때 원하는 맛이 나오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럴 적에는 라면 스프를 넣으면 된다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인다. 그렇게 라면이 맛있다고 해도 주식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왜냐고 하면 야식이나, 간식 또는 식사량이 부족할 때 많이 찾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밥보다 뜨거운 국물에 찬밥을 말아 먹는 게 맛있다고 한다. 라면과 찬밥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둘이 더해지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우리는 살면서 무엇인가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질 때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쓴다. 사람끼리의 궁합은 대부분 생년월일을 가지고 알아보는데,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에서 궁합은 꼭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그 것은 서로 잘 맞아야 무리 없이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연애결혼을 해서인지 우리는 궁합이라든가 좋은날을 잡아서 결혼식을 올린다거나 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결혼했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이유는 우리 부부가 모든 면에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반찬만 해도 남편은 즉석요리를 좋아하고 난 밑반찬을 좋아한다. 밥도 난 따끈한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남편은 식은 밥을 좋아한다.

취미도 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남편에 비해 나는 정적인 것을 좋아한다.라면을 먹을 때도 면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 먹고 난 면만먹는다.계란이라도 넣어 끓이면 난 노른자만 먹고 남편은 흰자만 먹는다. 그렇게 서로 다르지만 싸우는 일 없이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이번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웃으며 살 수 있는 것은, 라면에 찬밥이 더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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